2024년 12월 크리스마스날 대전 현충원 방문할 겸 성심당을 방문하였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벌써 기다란 줄을 만들고 있었다.
힘겹게 출발한 성심당
때는 1950년 11월, 중국공산군은 북한공산정권을 구출하기 위해 한국전에 개입하였다.
중공군의 두 차례 인해전술로 유엔군은 두만강, 압록강에서 후퇴를 하게 되고, 12월 경 서부전선에서는 임진강 선까지 밀렸으며, 동부전선에서는 12월 9일 중공군에 원산까지 점령되면서 남쪽으로의 퇴로가 끊기자 흥남항 부두에서 해상 철수를 단행하였는데 1.4후퇴의 전초전이었다.
당시 유엔군의 작전 암호명은 ‘크리스마스 카고(Christmas Cargo)’였는데, 미군의 병력과 장비, 물자를 싣는 데만도 수송선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흥남항으로 몰려든 수많은 피난민을 싣고 흥남항을 탈출하였다.
이때 함경도 출신인 성심당의 임길순 씨 가족도 1950년 12월 24일 라루 선장의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흥남부두들 탈출하여 남해안 거제도에 도착하였다.
흥남항 철수 작전은 큰 피해 없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어 ‘크리스마스 기적(Miracle of Christmas)’으로 불렸고,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임씨 가족은 거제도에 내린 후 진해에서 냉면 장사를 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기차는 대전역에서 고장으로 멈췄고, 가톨릭 신자였던 임 씨는 대전역에서 1.3km 떨어진 대흥동 성당을 찾았다.
당시 대전 지역 고아들의 아버지로 불리던 오기선 신부는 임씨가 흥남부두를 탈출해 대전까지 오게 된 과정을 들은 뒤 미군이 나눠 준 밀가루 2포대를 줬고, 임씨는 가족의 식량으로 소비하는 대신 대전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
1956년 10월 성심당의 첫 출발이었다.
이때 흥남부두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 돌아간다면, 남은 인생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맹세한 마음을 담아 성심당(聖心堂)이란 간판을 내걸고 실제로 실천하며 살았다.
그날 찌고 남은 찐빵은 이튿날 팔지 않고 가난한 이들이게 모두 나눠주고, 100개를 팔겠다는 계획이 서면 300개를 쪄내는 등 혹시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있을까 염려돼 늘 넉넉하게 찐빵을 만들었다.
성심당의 위기
임길순 씨는 빵보다 나눔에 더 관심이 많았고 부인인 현순덕 씨도 몇 가지 빵을 만들기는 했지만 복잡한 기술은 제빵 기술자들이 가지고 있었는데, 1976년 무렵 공장장을 비롯해 제빵 기술자 5명이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리는 통에 빵집에 위기가 왔었다.
당시 20세였던 임영진 큰아들은 많은 제과점이 오너셰프 체제가 아니어서 가게 운영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 주인에게 없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란 걸 깨달은 후, 직접 빵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시위로 인해 팔지 못한 빵을 시위대와 전의경들에게 나눠줬다가 시위대 동조 세력으로 지목되어 임길순 씨의 장남 임영진 대표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및 반정부 활동 혐의로 검찰에 불려갔고 성심당은 위생 단속까지 받으며 폐업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다행히 시위진압에 동원되었던 전경들이 "우리도 그 빵 먹었어요"라고 증언했고, 때마침 6.29 선언이 나오면서 무혐의로 풀려났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파리바게뜨, 뚜레쥬르를 포함한 이른바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경쟁적으로 늘어가는 상황에서 창업주 임길순 선생의 큰아들인 2대 임영진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남동생인 임기석이 1995년부터 무리하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추진하다가 부도 처리되면서 대전과 충남 지역에 산재해 있던 공장과 체인점들은 다 문을 닫는 망할 뻔한 사건이 있은 후, 이 무렵 1997년 창업주 임길순씨 마저 돌아가시고 아들 임영진씨를 중심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본점을 중심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또 2001년 8월 개인 사업자에서 ‘로쏘 주식회사’ 법인을 설립하고 임영진 씨가 대표로 취임한 후, 2005년 1월 22일 밤 화재가 발생하여 1~3층이 불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심당은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으나, 직원들이 직접 비교적 쓸 만한 기계들을 수리하고 청소하고 복구하며 단 5일 만에 화재를 수습하고, 6일 만에 빵을 굽고 일주일 만에 빵을 완성시켜 재기하는 발판이 마련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성심당의 기적
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이자 전국 비프랜차이즈 제과점 중 매출 1위를 기록하고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것은 물론, 2011년 프랑스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되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교황이 KTX로 이동하며 아침 식사로 성심당 빵을 먹었다. 이때 교황이 팁으로 유로를 주었다고 하는데, 2019년 현재에도 그 유로화가 가게 안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2016년 창립 60주년에는 불우한 이웃에게 빵을 기부해온 가톨릭 정신을 인정받아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자신의 친필 사인이 적힌 성 그레고리오 교황 기사 훈장을 받았다.
2024년 4월 말 발표에 따르면 2023년 영업이익은 무려 315억원에 달해, 파리바게뜨(199억원), 뚜레쥬르(214억원) 등 대기업 빵집 프랜차이즈의 영업이익을 앞지르는 점도 놀라운데, 성심당 단일 빵집으로 1234억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성심당의 대전에서의 위상은 절대적이며 가격 대비 가성비가 좋은 빵집으로 하루 내방객 1만7천명이 넘고 1년에 한번 직원 체육대회 날에만 문을 닫는다.
향토기업인 동네 빵집 하나가 대기업과 경쟁에서 이겨내고, 문화 아이콘으로 팬덤(fandom)을 만들어낸 건 또 하나의 기적이다.
PS. 흥남 철수 작전이 끝난 뒤, 다수의 인명을 구한 공훈으로 기네스 기록까지 오른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나라의 무관심 속에 1993년 '고철'로 355,900달러(당시 환율로 2억 8500만원)으로 중국에 팔려 해체되면서 역사 속으로 쓸쓸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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