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에서는 이 우주의 실체를 존재의 문제로 탐구한데 반해,
동양철학에서는 우주는 기(氣)로 구성되어 있고, 기(氣)를 움직이는 질서는 이(理)로 보았다.
정도전이 불교를 비판하며 쓴 책 불씨심성지변(佛氏心性之辯)에서,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아 태어난 본성(本性)은 理고,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아 태어난 마음(心)은 氣라 했다.
주자(朱子)는 우주 자연 운행 법칙에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법칙이 있듯이,
인간 세상의 도덕법칙인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간이 본래 지닌 본성(本性)으로서 氣에 종속되지 않는 理로 해석했고,
理가 사람에게 명령하는 도덕적 품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자가 인간의 本性을 理로 해석했다 해서 성리학(性理學)이라 하고,
주자에 의해 성리학의 집대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한다.
理氣논쟁은 송나라 초 주렴계(周濂溪)로부터 출발하는데, 주렴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은 태극도(太極圖)를 그린 그림에 설명을 붙인 것이다.
대단한 건 249자에 불과한 이 짧은 문장이 천년의 동양 철학 사상사를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시작 글 일부만 살펴보면,
無極而太極(무극이태극) -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太極動而生陽(태극동이생양) -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생성하고,
動極而靜(동극이정) - 움직이는 것이 지극해서 고요하며,
靜而生陰(정이생음) - 고요해서 음을 낳고,
靜極復動(정극복동) - 고요함이 지극하면 다시 움직이니,
一動一靜 互爲其根(일동일정 호위기근) -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이 서로 그 뿌리가 되며,
分陰分陽, 兩儀立焉(분음분양 양의입언) -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두 가지 모양이 세워진다.
陽變陰合(양변음합) - 양이 변하면서 음을 합하여,
而生水火木金土(이생수화목금토) -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이 생성되며,
五氣順布(오기순포) - 다섯 가지의 기운이 골고루 펼쳐져
四時行焉(사시행언) - 춘하추동 사시의 계절이 운행된다.
五行一陰陽也(오행일음양야) -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陰陽一太極也(음양일태극야) - 음양은 바로 하나의 태극이니,
太極本無極也(태극본무극야) -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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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無極)→태극(太極)→동정(動靜)→음양(陰陽)→오행(五行)→사시(四時)→오행(五行)→음양(陰陽)→태극(太極)→무극(無極)
“무극이 태극이고, 태극의 움직임이 지극한 반면 고요해,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으로 오행이 생성되면, 오행의 기운이 골고루 퍼져 춘하추동 사시가 운행된다. 그러면서 다시 무극으로 돌아간다”는 알듯 모를듯한 글이다.
理란 원리적 개념으로 이념(理念), 이론(理論), 이치(理致) 등 이상적 세계관을 나타내고,
氣란 이 세계를 구축하는 물리적 근거로서 경험적 개념으로 에너지, 기운(氣運), 공기(空氣), 전기(電氣) 등 현실적 세계관을 나타낸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에는 사단칠정(四端七情)이 있는데 사단인 인의예지(仁義禮智)는 理에 해당하고, 칠정인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은 氣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선설은 인간의 도덕적 성품의 선천성을 말한 것으로
氣보다 理를 중시한 주자의 성리학은 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의 적통을 잇고 있다.
주자의 理는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도덕적 원리(Moral Principle)로 천리(天理)이고,
氣는 현실적 사물을 구성하는 모든 것으로 인욕(人欲)이다.
주자는 주리론의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을 제일 명제로 꼽았는데, 인간의 욕망은 억제하고 천리인 하늘의 이치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주자의 해석적 입장은 태극(太極)은 理이고, 음양(陰陽)은 氣로 본 것이다.
또 마음(心)에는 氣에 해당되는 감정(感情)적인 측면과 理이 해당되는 본성(本性)적인 측면이 있는데,
따라서 주기론자(主氣論者)들은 인간의 감정적인 것에 대해 관대할 수 밖에 없었고,
주리론자(主理論者)들은 인간의 감정적인 것에 대해 매우 엄격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체제의 관료제를 확립하기 위해 주리론(主理論)을 받아들였고, 이 성리학 즉 주자학의 토대 위에서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사서(四書)을 익히는 과거제도를 시행했고, 사대부들의 엄격한 윤리의식을 강조하게 되면서 조선왕조는 매우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사회가 된 것이고, 그 주리론적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에서의 생활질서의 근간인 관혼상제(冠婚喪祭) 속에서
유교의 사단칠정론은 주자의 이기논쟁을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재미난 건 궁극적으로 이(理)를 받들고, 주자학을 신봉한 이퇴계는 남인의 우두머리 격인데,
나중에 남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퍼트렸다는 것이다.
조선의 기독교는 선교자들이 가져온 게 아니라,
남인들이 주리론적 관점에서 원래 인간은 선하다고 하는 이론을 기반으로 망해가는 유교적인 조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고,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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